기사입력시간 16.04.28 06:12최종 업데이트 16.04.28 10:43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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[참회글]사기꾼을 알아보지 못한 죄

가짜 신사유람단, '서준혁'에 관해

'의사' 가운을 입은 서준혁 씨

 
황당하고, 창피하며, 헛웃음이 나온다.

사기꾼 한 명에 기자도 울고, 편집국도 울고, 의료계도 울었다.


이 글은 '사기꾼'을 판단하지 못했던, 한 기자의 참회 글이다.


지난달 29일 본지의 자매 사이트 메디게이트(www.medigate.net, 의사 전용 포털 사이트)의 관리자는 한 의사 멤버에게 칼럼니스트 서준혁 씨를 소개받는다.

본인을 일본 디지털 헬스케어 전문가라고 소개한 서 씨는 한국과는 다른 일본 의료 환경을 모국의 의사와 공유하고 싶다며 기고를 제안했다.



37세(1978년생), 게이오대학교 IT Professor 조교수, 일본 의사 정신과 수련의


그가 가진 독특한 이력이다.

서 씨는 고등학교 중퇴 후 검정고시에 합격했으나, 고등학교 때 설립했던 전자상거래 사이트가 게이오대 관련자 눈에 띄어 최연소 교수 제안을 받아 일본으로 건너갔다고 한다.(2006년 한 매체와의 인터뷰)

최근 서 씨는 의료 전문지와의 인터뷰에선, 2009년 게이오의대에 입학해 의사가 됐다고 밝혔다. 

메디게이트 포털 사이트(뉴스 말고)가 그의 고정 칼럼을 긍정적으로 고려할 때 쯤, 서 씨의 이력에 호기심을 갖던 전문지들은 인터뷰 기사를 쏟아내기 시작했다.

얼마 후 SNS엔 그의 인터뷰가 떠돌았고, 새로운 지식에 감탄하는 댓글들이 이어졌다.


4월 4일 그의 첫 메디게이트 칼럼은 게재됐고, 기자는 그 내용에 약간 당황했다.

당시 기자는 해외 원격의료에 관한 기사를 쓴 직후였는데, 서씨가 소개한 일본 원격의료가 기자가 정리한 내용과 많이 달랐기 때문이다.

당시 '권위자'의 오류 가능성을 전혀 의심하지 않았던 기자는 '내 취재가 왜 이따위로 된건가?'라는 자괴감이 먼저 들었다.


권위 앞에 의심을 해제했던 기자
 
기자의 지식은 권위자 앞에 무릎 꿇었다.

기자의 기억 어딘가에 있던, '미국조차 인공지능 왓슨의 의료 도입이 2010년 이후였다'는 사실은,

서 씨가 전문지 인터뷰에서 주장한 "왓슨, 2009년부터 이미 일본 40개 병원과 협업 중'이란 말에 의심 없이 꼬리를 내렸고,

아직 '일본의 원격의료 수가에 관한 합의가 이뤄지지 않은 상황'이었던 취재 결과는

"일본 정부, 원격의료 땐 일반 수가 대비 최고 6배까지 지원한다"는 서 씨의 주장에 현지 사정을 모르는 부족한 정보가 됐다.


기자가 넋 놓고 무비판적이었던 건, 그의 칼럼 내용이 다가 아니었다.
 
"서 교수는 1997년 일본으로 건너가 게이오대에서 정보기술(IT) 박사 과정을 마쳤다. 원격의료, 인공지능 등 의료IT 연구에 주력하기 위해 2009년 게이오의대에 입학했다. 그는 게이오의대병원에서 의료IT 전공 교수 겸 신경정신과 의사로 활동하고 있다." - C일보의 서준혁 씨 인터뷰 기사 중
 

기자는 조금만 생각해도 오류가 확인되는 이런 기사도 별 의심 없이 지나쳤다.

우리나라처럼 의대 과정이 6년제인 일본에서 서 씨가 기사처럼 2009년에 게이오의대에 입학했다면, 2015년이 돼야 인턴(견습의)을 시작할 수 있다.

게다가 인턴 과정이 2년인 일본에선, 내년은 돼야 서 씨가 '신경정신과 전공의'라는 직함이라도 달 수 있다.

설령 일본 의대에 국내처럼 편입이 존재해 서 씨가 짧은 기간에 마쳤다 해도, 그가 인터뷰에서 밝혔던 것처럼 '수련의 신분'으로 "안식년을 얻어 국내에 6개월 체류하러 왔다"라는 건 말도 되지 않는다.

 
그의 SNS 프로필 사진, 명찰엔 '게이오대학병원'이라고 쓰여있다. 

 
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과정
 
기자가 서 씨의 사기 가능성을 안 건, 얼마 전 지인에게 문자를 받고 나서다.
 
지인은 기자에게 "서준혁 씨가 사기꾼인 것 같으니, 그의 칼럼을 내리는 게 좋겠다"고 충고했다.
 
그의 프로필 중 사실로 확인된 게 하나도 없다는 것이었다.
 
이미 서 씨가 여러 학회에 연자 초청을 받고, '일본의 왓슨 활용 사례에 관한 데이터'를 공유하기 위해 정부 관계자까지 접촉한다는 소식이 전해지고 나서다.
 
 
한 춘계학회에 초대받았던 서 씨. 현재 이 학회 프로그램은 수정된 상태다.

지인의 말이 맞다면, 전문지와 의료계 전체가 사기꾼 한명에게 농락당한 셈이다.

이런 '초현실적인 현실'을 확인하기 위해, 기자는 서 씨에게 확인요청 메시지를 건넸다.


기자는 일본으로 다시 건너간 서 씨에게 확인 메시지를 보냈고, 그가 건넨 대답은 이랬다.





기자는 추가 메시지를 보냈지만 대답을 듣지 못했고, 어렵게 전화를 시도해 연결에 성공했다. 

서 씨는 전화를 받자, 해명을 먼저 했다.

 
서 씨 "현재 본인 프로필과 관련해서 한국에서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알고 있다. 거기에 대해선 말해 줄 수 있는 게 없다."
 
기자 "그럼 이거 하나만 묻겠다. 현재 일본 의사 신분이 맞나?"
 
서 씨 "그 부분에 있어서 확인을 해 줄 수 있는 근거가 없다."
 
말이 어려워서, 바꿔 물었다.
 
기자 "일본 의사 국가고시에 응시해 합격한 사실이 있는가?"
 
서 씨 "정확하게 말할 수 있는 부분이 없고, 그런 오해를 풀기 위해 현재 일본에서 1개월 간 증명할 수 있는 근거를 만들겠다(?)."
  
 

그가 답을 두루뭉실하게 해준 덕분(?)에, 기자는 현재 다음 두 가지를 확인 중이다.

 
1. 프로필 진위 여부
 
-구글의 검색 능력으론 그가 게이오 대학과 관련 있다는 어떤 정보도 찾지 못했다.

-게이오대학엔 그의 프로필에 적혀있던 'IT Professor course'라는 게 없다는 사실이 확인됐다. 

-서 씨가 2006년에 경제 전문지에 알렸던 프로필과 올해 의료 전문지에 공개한 프로필은 서로 상충되는 내용이 많다. (검정고시 합격 후 게이오대 진로 VS 고졸 후 국내 대학 2년 수료) 
 
-기자는 현재 게이오대, 게이오대 대학병원과 신경정신과 의국에 그의 소속 확인을 요청한 상태다.
 
-그리고 일본의사협회에도 그의 일본 의사 자격 확인을 요청했다. 


2.그가 전파한 일본의 원격의료
 
그는 국내 매체와의 인터뷰를 통해 다음과 같은 주장을 펼친 바 있다.
 
1)후생(노동)성은 원격의료를 늘리기 위해 의사들에게 ‘당근’도 줬다. 의사가 한번 원격의료를 하면 진료비로 1만 5000엔(15만원)을 받는다. 원격의료 1회당 진료비는 보통 진료비 2500~4000엔 보다 최대 6배 이상 많은 금액이다.
 
2)일본은 20억원을 들여 원격의료와 대면진료의 동등성을 평가했다. 원격의료의 오진율은 전체 진료의 1%에 불과했다.
 

기자는 다음과 같은 사실을 알아냈거나, 확인 중이다.
 
-아직 서 씨가 주장한 상기 내용을 뒷받침하는 근거를 찾을 수 없었다. 
 
-일본에서 체류 중인 몇몇 한국인 의사에게 해당 내용 확인을 요청했으나, "관련 사실에 대해 들은 바가 없다"라는 내용을 전달받았다.

-서 씨의 칼럼과 지식, 인터뷰 내용은 모두 일본의 인터넷 기사(특히 니혼게이자이신문)를 짜깁기한 내용이다.
 
-현재, 일본의 후생노동성(우리나라의 보건복지부 역할)에 관련 내용 확인을 요청한 상태다. 

#게이오 #서준혁 #사기꾼 #메디게이트뉴스

김두환 기자 (dhkim@medigatenews.com)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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